수술 후 아직 몸상태가 말이 아니다. 좋을 때도, 나쁠 때도 있지만 컨디션이 오락가락한다. 지금도 잠든 지 4시간만에 일어나서 통증에 마약성 진통제를 우겨넣고 조금 살만하다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까 요근래 내 생활이 알만하다. 별 생각없이 넋두리, 일기를 쓰려했는데 오늘이 9월 1일, 9월의 첫 날이라는 걸 알았다. 요즘 울컥울컥 감정이 올라와서 좀 자제하자 생각했는데, 벌써 1년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. 


작년 9월 1일, 그러니까 꼭 1년 전에 난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았다. 많이들 쓰는 표현으로 암을 선고받았다. 아마 앞으로도 그 날을 잊을 수 없겠지. 나는 내가 똥촉이라고 생각했지만, 그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, 사람의 직감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워서 그 날따라 나는 하지않던 화장까지 곱게하고 집을 나섰더랬다. 오빠는 경계성 종양정도 일거라고 계속 얘기했지만 나는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. "결과는 직접 와서 들으셔야 할 것 같아요. 최대한 빨리 내원해주세요." 병원에서 연락을 받았을 때부터 그랬다.


최악을 가정하고 병원에 내원했지만 나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더 악화된 상태였다. 의사는 아직 젊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야하는 상황이 많이 불편한 것 같았다. 최대한 부드럽고 친절하게 이야기하려고 애쓰는 것이 눈에 보였다. 환자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처음이 아닐 나이 든 의사가, 이렇게 젊은 사람이 이런 계통의 암에 걸린 건 사실 처음 본다고, 중간에 말을 잇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에서 나는 동정을 읽었다. 그 의사에게 자식이 있다면 딱 내 또래정도일 것 같았다. 마음이 편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.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죽음이 가깝게 느껴졌던 순간에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. 약간 눈물을 글썽거렸던 것 같다. 하지만 울거나 하지는 않았다. 다시 돌이켜봐도 너무 담담한 반응이었다. 이 날은 앞으로 수십 번은 들을 '의료기술이 많이 발전해서 요즘은 암도 치료 잘 받으면 완치할 수 있어요' 멘트를 처음으로 들은 날이기도 했다.


살면서 엄마에게 넌 너무 이기적이라는 말을 매일같이 듣고 살았다. 그래서 나는 내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.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내 마음 깊은 한구석에는 내가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는 평가가 자리하고 있었다. 그게 아니라는 걸, 이 날 알게 됐다. 병을 알고나서 죽으면 어쩌지 하는 내 자신에 대한 걱정보다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우려, 걱정, 미안함의 감정이 제일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. 돌이켜보면 적어도 그 순간 나는 참 이타적인 사람이었다.


내년에도 벌써 2년이야 하면서 글을 쓸 수 있을까. 쓸 수 있겠지. 

돌이켜보면 지난 1년간 하루도 몸도 마음도 편한 날이 없었는데 버텨준 내 자신에게 고마울 뿐이다.


 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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